블로그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국가대표로 출전하기까지

등록일 2018-05-26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국가대표로 출전하기까지
 

ⒸGettyImages


슬라이딩 종목 (썰매 종목)의 불모지, 금메달이 전무했던 곳에서 그들은 왜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대한민국에서 슬라이딩 종목은 2018 평창 전과 후로 나눠질 정도로 많은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종목이었다.
기업의 후원도 부족했고 시설도 열악하다 보니 좋은 성적을 내기는 쉽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 많은 어려움들을 모두 이겨내며, 의미 있는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에서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종목에서 대한민국을 빛내 준 선수들, 그들은 어떻게 이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슬라이딩 종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트랙 위의 질주, 스켈레톤 윤성빈&김지수



윤성빈, ⒸGettyImages


“힘들면 그만둬야겠죠. 하지만 1%의 가능성이라도 주어진다면, 해야죠” - 윤성빈


세계를 정복한 아이언맨 윤성빈은 스켈레톤이 뭔지도 모른 채 첫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섰다. 고등학생 시절,  “한국 체대로 와라” 라는 체육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장소에 도착해서야 스켈레톤 국가대표 선발전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윤성빈. 장발 머리와 반바지, 구겨진 운동화 차림으로 선발전에 참여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이제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1차 선발전 당시에는 달리기에서도 전체 10등을 기록하는 등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윤성빈의 높은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슬라이딩 종목 1호 올림피언이자, 슬라이딩 전 종목 (스켈레톤, 봅슬레이, 루지) 올림픽 출전을 했던 강광배 교수였다. 그는 윤성빈을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시켰고, 윤성빈은 훈련 3개월 만에 2차 선발전에서 모든 선배들을 이기고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다. 

그 뒤 윤성빈은 몸무게를 늘리기 위해 하루 8끼 이상을 먹고, 강도 높은 근력 훈련을 묵묵히 소화해가며 허벅지 근력 등을 키워나갔다. 국제 대회에서도 점차 두각을 보이기 시작해, 스켈레톤의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를 위협하는 라이벌로 무섭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트랙 위 아이언맨은 트랙 레코드를 기록하며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트랙 위 또 다른 영웅, 김지수!

김지수는 이번 올림픽에서 6위를 차지했다. 그는 원래 멀리뛰기 선수였지만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스켈레톤으로 전향하였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스켈레톤에 입문했기 때문에 윤성빈보다 2년 늦게 시작했지만 성장 속도는 윤성빈보다도 더 빠르다.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4년 후 베이징에서는 윤성빈과 김지수가 나란히 시상대에 서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4명이 하나가 되어, 봅슬레이 김동현, 전정린, 원윤종, 서영우 



(왼쪽부터) 원윤종, 김동현, 전정린, 서영우, ⒸGettyImages


 “우리는 선수다. 긴말하지 않고 트랙에서 모두 보여주겠다” - 김동현


김동현은 청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2007년 수술로 청력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는 2008년 재미 삼아 참여한 <봅슬레이 서울시 대표 선발전>에 붙어 봅슬레이에 입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발전 당시 김동현은 장애인 체육을 공부하기 위해 캐나다 유학 준비 중에 있어서 선발전에 나갈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 유재석의 팬이었던 그는 선발전에 ‘무한도전’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유재석을 보려는 마음에 참여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지만,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애쓰는 다른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진지하게 선발전에 임했고, 결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김동현의 과 후배인 전정린은 2009년 김동현과 유재석이 출연한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을 보고 봅슬레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2011년 김동현에게 봅슬레이를 소개받아 함께 국가대표로 뛰게 되었다. 




(왼쪽부터) 서영우, 원윤종, ⒸGettyImages


“개개인의 기량은 유럽, 북미 선수들을 앞서지 못한다. 하지만 네 명이 뭉치는 힘은 우리가 강하다” - 원윤종


체육교사를 꿈꾸던 대학생 원윤종은 2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봅슬레이를 입문하였다. 학교 게시판에 서 우연히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 공고문을 보고 출전했는데, 1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체육 교사라는 꿈이 아닌, 또 다른 꿈을 꾸며 봅슬레이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때는 팀을 지도하고 이끌어줬던 말콤 로이드 코치가 세상을 떠난 일이었다. 원윤종뿐만 아니라 봅슬레이 팀에게 말콤 로이드 코치는 단순한 코치 이상이었다. 그는 ‘2018년 평창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코치님 영전에 바치고 싶다’라는 포부 아래 훈련과 경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금메달 못지않게 값진 은메달을 딸 수 있었다.  

육상선수 출신인 서영우는, 원윤종의 과 후배이다. 스무 살 때 우연히 봅슬레이 강습회에 갔다가 봅슬레이의 매력에 반했다. 그는 힘과 스피드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봅슬레이만의 폭발적인 경기력에 매료되어 국가대표까지 되었다고 한다.

봅슬레이는 우리나라에 비교적 늦게 도입되었기 때문에 훈련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트랙 등 훈련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바퀴가 달린 썰매를 타고 아스팔트 위에서 훈련을 해야했고,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해외 전지훈련에서는 비용 문제로 썰매를 운송하지 못해 외국 선수들에게 중고 장비를 빌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의 놀라운 열정은 결국 값진 은메달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노력의 땀방울은 결코 이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훈련과 경기를 치른 모든 평창의 영웅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